23.난장이 홍길동에게 혼난 헤리포더 - 115

 

 

오늘은 마지막 작별에 앞서 길동은 윤서 방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윤서 방에 들어온 길동은 윤서방의 이모저모를 살피며 예전 조선시대 자기가 공부할 때를 상상하며 참 세월이 많이 변한 것을 느꼈다. 윤서 개인 컴퓨터, 작은 TV, 구석에 세워둔 퀵보드, 축구공, 배드민턴 용구 등 길동이 상상도 못하는 기구가 자리한 것을 보고 현대생활을 실감했다. 물론 길동의 율도국에는 여기 보다 더 발달한 기구가 있긴 하지만 조선시대와 견주어 하는 말이다. 윤서의 책꽂이를 보니 거기에도 별의 별 책이 칼라로 제본돼있고 율곡, 퇴계선생 같은 학자와 이순신, 을지문덕 장군 같은 위인전, 세종대왕전 심지어 홍길동 자기를 소재로 소설화한 신판 홍길동전과 만화 등 조선시대와는 상상도 못하는 책들이 화려함을 뽐내고 있어 놀랐다.

 

 

때마침 TV에서 뉴스가 나왔다 한참 일반 뉴스가 지나가고 낮에 길동이 민속촌 구경 갔던 특별 뉴스가 나왔다. 이 뉴스 앞머리에 길동이 윤서를 구름에 태우고 민속촌을 둘러본 동영상과 아울러 어느 관광객이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 이 뉴스에서도 확실한 근거를 잡지 못한 사진 합성술 일 가능성을 비치며 마무리 짓고 만 뉴스였다.

 

 

 

바로 그 때, 길동이 무슨 생각을 했던지 손가락을 깨물더니 뉴스가 나오고 있는 화면에 눈 깜짝할 새 둔갑술을 걸어 화면을 바꾸었다. 그것도 우리가 보는 일반 텔레비전의 평면화면이 아니라 입체화면으로 말이다. 그 때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안경을 끼고 보는 입체영화는 있어도 TV화면이 입체로 보인다는 건 정말 논라운 일이다. 화면 속에서 사람이 입체로 툭 튀어나와 움직이고 있으니 정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이는 윤서 방에서 만의 장면이 아니라 전국의 7시 저녁방송에서 모든 시청자가 동시에 입체로 시청할 수 있게 방영되고 있는 특종 뉴스이다. 각 가정은 물론 방송국에서도 어안이 벙벙해 놀라고 있다. 일반가정에서야 뭐, 방송국에서 뉴스 막간에 특별 뉴스 동영상이나 사진을 입수해 지금 끼워 넣어 방영하는 줄로 만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입체 방송을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한 자막이나 설명도 없어 놀라워 하며 현재의 장면을 시청하고 있다.

 

 

 

지금 막 하늘에 난 데 없이 빗자루 여덟이 줄맞추어 짚 인형 일곱을 태우고 날아가는 화면이 비치고 있다. 입체로 빗자루 부대가 화면 밖의 공중으로 날아가는 장면이다. 온 나라 시청자들도 지난 번 장성 홍길동 소동 때 빗자루가 짚 인형을 태우고 아차실 서편하늘로 날아간 장면을 떠올리며 그 후의 사연이 궁금해 하던 차다.

 

 

, 저거다! 짚 인형!?”

윤서가 소리 지를 새 벌써 짚 인형들이 곤두박질치며 고속도로 바닥에 떨어져 삽시간에 타작마당처럼 흩날리던 그 광경이 생생하게 재생 되었다. 그 때 방안에 짚북데기 부셔진 먼지까지 보얗게 날리고 있다. 그 장면은 그 걸로 끝난 게 아니다. 떨어지다 만 빈 빗자루 하나는 어떤 차의 앞 유리를 깨뜨리기도 하고 또 어떤 빗자루는 지붕에 부딪치기도 하며 다시 하늘로 날아 올라가더니 떨어지지 않았던 또 한 개의 맨 앞의 빗자루와 함께 여덟 개의 빗자루가 나란히 줄맞춰 날아가는 장면까지 또렷이 비쳤다. 윤서는 정말 어안이 벙벙해 길동을 쳐다보고 또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며 혀를 내 둘렀다. 윤서 뿐이 아니다. 전국의 시청자들도 놀라 어안이 벙벙해 눈을 떼지 못하고 정신을 팔고 있다.

 

, 윤서야! 또 볼래? 저 게 다 누구의 짓인지 알아?”

 

윤서가 길동을 쳐다볼 새 화면은 벌써 바뀌어 맨 앞의 빈 빗자루에 어떤 아이 하나가 탄 게 보였다. 언뜻 보니 영화관에서 본 헤리포더 같았다.

 

, 저건 영국의 헤리포더구나!”

 

멀어서 잘 안보이지? 자 자세히 봐!”

 

길동은 맨 앞의 헤리포더를 크게 보이게 비쳤다.

 

그러자 헤리포더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 되니 윤서는 대번에 헤리포더임을 알아챘다.

 

*클로즈업 ~ 촬영 대상의 중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화면에 크게 나타나도록 비춤

 

 

이는 물론 전국의 시청자뿐이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방송국에서는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어리둥절해, 어떻게 우리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프로도 아닌데 누가 어떻게 지나간 장면을 찍어 보관해 두었다가 우리 방송프로 중간에 입체로 끼어 넣었는지 알 수 없어 방송국의 전문 기사들까지도 머리를 흔들고 있다.

 

 

길동은 여기서 장난을 멈췄다. 헤리포더의 얼굴을 확인시킨 장면이 꺼지고 아까 방영되던 정규방송이 이어지게 돌려 버리고 말았다. 방송국은 물론 전국의 시청자들도 좀 전의 헤리포더의 장면은 너무 황당해 방송국으로 문의 전화가 빗발쳐 방송국에서도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 정규방송마저 중단해야 할 지경에 이르러 하는 수 없이 얼른 자막뉴스로 진정하라는 설명문을 넣었다.

 

전국의 시청자 여려분! 놀라지 말고 진정하십시오. 지난 장성홍길동 축제 때, 홍길동 소동의 쓰러진 짚 인형이 살아서 빗자루를 타고 서쪽 하늘로 사라진 이후의 장면이 궁금해 하던 차, 입수한 필름을 조작 실수로 사전 예고 없이 막간에 먼저 들어가 방영되는 바람에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좀 전의 장성 홍길동 소동의 제 2편의 재방송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특집으로 방송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갑작스런 방송 실수를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이 사과 자막은 계속 두 번을 내보낸 후 사라졌다.

 

뜻하지 않게 당한 돌발 사태에 대해 원인을 알 수 없어 우선 이렇게 모면하는 글을 올리고 방송국 관계자 회의에서 사태 파악 후 홍길동 특집을 다시 꾸미기로 하고 정규방송이 방영되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돌발 뉴스가 터져 방송국에서는 진땀을 뺐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특집방송이 된 셈이다. 시청자들로는 장성 홍길동 소동후의 궁금증이 말끔히 사라진 생생한 뉴스가 되었으니 말이다.

 

윤서와 홍길동도 지금 방송국에서 임기응변으로 내보내는 자막 뉴스를 읽고 웃고 있다. 윤서는 지금 한국에 이런 홍길동이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그 날의 TV는 그것만 비춘 게 아니었다. 길동은 윤서의 눈을 영국으로 끌고 갔다. 지금 헤리포더의 공부방까지 속속들이 비치고 있으니 정말 놀라 말문이 닫히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장면은 TV 녹화처럼 며칠 전의 장면을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보는 식이다. 물론 이 화면도 입체로 보이고 있다. 이 장면은 윤서에게만 보이는 장면이다.

 

 

한국에 가서 혼난 헤리포더가 지금 막 영국에 도착했다. 헤리가 자기 공부방에 들어가면서 놀라는 모습이 비치고 있다. 아무도 없는 빈방에 들어서자마자 TV가 확 켜지면서 상품 선전 광고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빈방에 아무도 없는데, 누가 TV를 켰는지 지금 방송이 나오는 중이다. 그런데 또 헤리포더가 이상한 눈으로 허리를 굽히더니 화면 아래에 흐르는 자막 글씨를 훑어보고 섰다.

 

 

<헤리포더! 똑똑히 봐라!>

 

이런 자막이 영어로 흐르고 있다. 그 때 상품 광고 선전 방송이 중단되면서 헤리포더가 날아가는 장면이 나왔다.

 

어어? 저건 내가 한국에 가서 홍길동의 부하 짚 인형들을 데리고 오던 빈 빗자룬데? 어어? 여기 화면에 어떻게 그 게 비치지?’

 

헤리포더는 너무도 황당하고 놀라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금방 짚 인형들이 곤두박질 쳐 박살나는 장면과 좀 지나 빈 빗자루만 자기 뒤를 따라 날아오는 장면까지.

 

그런데 그 장면 아래에 또 자막문자가 흐른다.

 

<헤리포더! 난 한국의 홍길동이다. 잘 봐라! 넌 어쩌자고 우리나라에까지 허락도 없이 들어와선 내 부하들을 끌고 도망친단 말이냐? 내가 알기로는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들었다. 영국신사 헤리포더가 어찌 남의 부하들을 훔쳐 도망 칠 수가 있느냐? 어서 책임지고 사과해라! 내 부하들은 고속도로에 떨어져 다 박살나 죽었단 말이야. 어떻게 할 거야?“

 

어어? 책임지라고? 난 훔쳐 온 것도 아닌데... , 아무튼 대단하구나. 여기서 동쪽의 코리아라면 정말 먼 곳인데 어찌 여기 TV에 까지 나올 수 있을까? 정말 놀랍다. 도대체 홍길동이란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

 

 

 

 

 

그는 며칠 동안 홍길동에 대해 수소문하고 알아보았지만 한국의 홍길동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한 영국대사관 직원으로 파견 나가 살다온 가족의 아이한테 들으니 한국에 홍길동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 사람이면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니 도대체 언떤 인물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까? 그런데 그 유명한 홍길동은 왜 영국에서는 모를까? 그는 또 며칠 궁리한 끝에옳지! 대영박물관에 가서 찾아 봐야겠다. 그리고 한국의 인물사전을 살펴봐야지... ’

 

헤리포더의 친구 롱위즈 그리고 여자 친구 헤르미그렌을 비롯하여 마법사 학교 동창들 다섯명을 데리고 대영박물관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한국의 인명사전을 죄다 뒤졌으나 단군할아버지를 비롯하여 현대인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심지어 욘사마로 이름을 날리는 한류 스타 배용준, 마술사 이은결까지 다 나와 있는데 홍길동은 없었다.

 

어어? 없을 리가 없는데. 똑같은 홍길동 일곱을 데리고 무대에 나타날 정도면 한국인으로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마슬사이거나 이 보다 급이 낮은 이은결도 나와 있는 인명사전에 홍길동이 없다니? 그는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무릎을 탁 치더니 세계에서 제일 크고 자세하다는 브리태니커 대영백과사전을 열었다.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세계에서 제일 크고 자세한 영국대백과사전(30)

 

 

앗 거기에는 홍길동의 캐릭터(디자인 인물 그림)까지 버젓이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진짜 확인해봐야지....)

 

, 그런데... 이 사람은 벌써 죽은 지 400년 전 전설 같은 허균이 지은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 그렇다면 진짜 사람도 아니잖아? 그런 홍길동이 살아서 활동을 해? 그 참 이상하지?

 

그 때 등 뒤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