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길동의 서울 구경 - 107
길동의 치료는 오늘로서 끝났다. 며칠 동안 현중이네 집에 머물면서 삼*병원으로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윤서는 모처럼 길동을 데리고 시내 나들이를 했다. 물론 길동의 옷은 윤서의 옷으로 변장해 입고서다. 윤서의 여름옷으로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히니 아무도 몰라보게 여느 아이들 차림이다. 거기다 운동모와 운동화까지. 키나 몸집까지 꼭 비슷해 윤서 친구로서 손색이 없다.
윤서와 길동은 시내로 들어가려고 마을버스를 타러 내리막 골목길을 벗어났다. 저만치 마을버스 정류장이 내려다 보였다. 그 때 같은 반 여자 친구 수옥이가 앞서 가는 게 보였다. 윤서는 느닷없이 길동을 끌고 옆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홍길동 때문에 좀 귀찮다고 생각해 수옥이를 피한 것이다. 옆 골목으로 해서 마을버스 정류장 하나 더 가서 서는 정류장으로 나갔다. 그때 막 커브를 도는데
“어머! 윤서 아냐?”
하며 느닷없이 수옥이 나타났다. 깜짝 놀란 윤서가 어벙하니 놀란 눈을 하며 수옥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수옥이 눈에도 놀란 모습으로 비쳤던지
“얜, 남자가 여자보고 놀래?”
하며 빈정댔다.
“어어? 그럼. 남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무서운 거야. 너 그런 거 몰라?”
이렇게 얼버무리며 무안함을 삭였다.
“수옥인 어디 가아?”
“응, 나 엄마 심부름. 근데...?”
수옥이는 윤서 곁에 선 처음 보는 홍길동을 보더니 어디서 많이 본 듯, 이 동네 친구는 아닌 것 같아 의아한 눈으로 윤서를 쳐다보았다. 궁금해 하는 수옥의 눈을 본 윤서가 입을 열었다.
“아, 참 내친김에 서로 인사나 나눠. 여기 이 친구는 시골서 온 내 친구 홍동길이야. 여긴 우리학교 같은 반 여자 친구 채수옥이라고 해. 우리 반에서, 아니 우리 학교에서 최고 미인이야.”
유별난 인사소개를 받은 수옥이 윤서의 팔뚝을 꼬집는 시늉을 하며 홍동길을 돌아보며 살며시 고개 짓을 했다. 빙그레 웃고 섰던 길동이 답례로 약간 고개를 숙이며 윤서 인사말처럼
“나, 홍동길이야”
하며 악수를 청해 손을 내밀었다. 17세기의 옛 홍길동도 언제 21세기 서양 물을 먹었는지 악수까지 청해 둘이 자연스레 손을 잡고 흔들었다. 길동은 속으로 ‘역시 미인은 다르구나’ 하며 수옥이 손 촉감이 여느 사내아이들 같지 않게 부드러움을 느꼈다.
악수가 끝난 수옥이 여전히 의아한 눈길을 거두지 않고 윤서를 쳐다보자 윤서가 각오를 한 듯 입을 열었다.
“너 아직 뭔가 의아한 모양이지? 자꾸 쳐다보며 갸우뚱하는 게...‘
수옥이 역시 궁금증이 가시지 않아 갸웃하며 홍동길과 윤서를 번갈아 보며 엷은 미소를 흘렸다.
“동길인 시골 어디야?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설지 않아서 그래...”
“그래, 맞아. 얠 만나는 사람마다 누굴 닮았다고 하며 쳐다보더니 너 또한 그래서 묻는 거지?”
“맞아. 나도 그래서 그래. 뭐? 홍동길? 홍길동....?”
역시 수옥의 눈도 예사롭지 않다. 거의 홍길동 이미지와 이름까지 바로 짚어 급소를 찔렀다. 길동이 또한 싱글싱글 웃고 섰고, 윤서 또한 진짜 홍길동의 정체를 감추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야아... 수옥이 너, 참 눈 밝다. 아니 밝은 정도가 아니라 너도 보통 머리가 아니네? 어쩜 다른 사람들과 꼭 같은 말을 하지? 다들 홍길동이 아니냐며 지나가는 아이들까지 되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한단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내가 뭐 특별히 알아 맞혔냐? 그까짓 거 가지고 뭐 눈이 밟아? 역시 얜 홍길동과 너무 흡사하게, 아니 닮았기 때문이지. 이름까지 뭐? 홍길동... 뭐? 아니. 홍동길?”
윤서가 얼결에 만들어 낸 가짜 이름까지 거의 닮은 홍동길이 시중에 나도는 홍길동 캐릭터의 모습에다 지난 장성 홍길동 축제 때 홍길동 소동 보도까지 나왔던 터라 가는 곳마다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으음... 너무 닮았다 얘! 동길이, 너 정말 탤런트 하면 인기 끌겠다.” 정작 홍길동보고 하는 소리다.
“고마워. 내가 뭐, 그렇게 홍길동 닮았나? 수옥이, 넌 정말 예뻐. 이담에 미쓰 코리아 나가면 틀림없겠어. 너 같은 미인을 소개받은 난 행운아야. 잘 부탁합니다. 채수옥 아가씨! ” 길동은 정말 허리를 굽혀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고마워. 공연히 비행기 태우지마. 홍동길!”
그 때 저만치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어어? 스톱! 스톱!”
윤서가 소리 지르며 달려갈 새 없이 버스는 벌써 모퉁이로 사라졌고 뒤따르던 길동이 또한 윤서 곁에까지 다가가자 윤서가 ‘에잇!’ 하며 다시 걸음을 멈춰 섰다. 그러자 수옥이
“다음 차 타지 뭐. 10분이면 오잖아? 자, 그럼...”
수옥이 생긋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수옥이 또 만나!”
길동이 손을 흔들었다. 수옥이와 작별한 길동이 수옥이 한 테 퍽 관심이 있는지 수옥이 저만치 걸어가는 뒷모습을 한참 서서 바라보았다.
윤서와 길동은 마을버스, 시내버스 그리고 지하철 이렇게 여러 가지 교통경험을 하며 서울 강남의 번화가 삼성역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무역센터 옆 코엑스 전시관으로 갈 참이다. 지하철 역사에서 지하통로로 바로 들어가는 통로도 있지만 길동을 위해 일부러 지상으로 나왔다.
“야아... 여긴 완전 외국 같구나. 빌딩도 어마어마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번화한 곳이야. 경제 특구인 셈이지. 그래도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야. 한 10년 전 만해도 아시아에선 일본 다음으로 날리던 나라였어. 그러던 게 어쩐 일인지 요즘은 이렇게 맥을 못 춘단 말이야. 이상해. 아주 풀이 죽었어.”
“그야 뭐 사람도 그렇잖아? 시험 성적이 좋다가도 쳐지기도 하고... 앞으로 열심히 하면 또 따라 잡지 않겠어?”
이들은 지하철 역 주변의 인터콘티넨털 호텔, 무역센터, 포스코 빌딩을 둘러보고 바로 앞에 보이는 네거리의 건너 유리 빌딩 등을 둘러보고 싶어 건널목을 건너갔다. 거기서 여기저기 건물들을 둘러보고 다시 코엑스로 건거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섰다. 바로 그 때 신호들이 켜지면서 파란불이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주욱 건거가고 있다. 윤서네도 막 건너가려는데 길동이 잡아 끌었다. 윤서가 갑자기 뒤돌아보니 길동이 제지하며 제자리에 섰다.
“왜 그래? 신호가 열렸는데...”
“아, 아니야 잠깐만 기다렸다가 다음 신호가 열리면 건너가자구”
“그건 왜?”
“잠시만 기다려봐”
바로 그때 삐익 -- 소리가 나더니 쾅! 소리와 함께 승용차끼리 서로 부딪쳐 건널목 횡단보도 쪽으로 튕겨 나왔다.
어어? 윤서와 길동은 서로 붙잡고 뒤로 물러섰다. 교통사고로 추돌한 차끼리 부딪쳐 건널목의 횡당보도로 튕겨 오는 바람에 막 건너가던 사람들 몇명이 널부러졌다. 죽진 않은 모양이다. 그 일대에는 뜻하지 않은 사로고 행인들 여럿이 쓰러져있고 언제 달려왔는지 교통경찰은 질서를 유지 하고 싸이렌이 울리더니 119 구급차가 막 도착했다. 그 사이에도 이런 사정을 모르는 신호등은 때 맞춰 빨강, 파랑을 연출하고 있다.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일대는 정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때가 되어 교통사고 수습하는 걸 보면서 윤서와 길동은 길을 건너 코엑스 입구로 향했다. -------
“어이, 길동아! 아까 네가 기다리자고 하지 않았더면 우리가 당할 뻔 했잖아?”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내가 기다리다가 다음 신호가 열리면 건너가자고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