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피 흘리며 쫓기는 홍길동 - (2)

 

한 편 도망친 한 명의 홍길동은 무대에서부터 강아지에게 얼마나 물렸던지 줄곧 피를 흘리며 쫓겨 나와 절뚝거리며 도망쳐 아차실 윗동네로 사라졌다.

강아지 임자도 강아지를 따라 달렸고 그 뒤로 관객들과 경찰관이 뒤따랐다. 강아지는 핏자국 냄새를 맡으며 죽어라고 짖어대며 마을 위쪽의 기와로 곱게 단장한 홍길동 생가 쪽을 향해 달렸다. 드디어 당도한 곳은 아차실 홍길동 생가 소슬 대문 앞.

소슬 대문 앞에서 멈칫 서서 좌우를 살피던 강아지는 곧장 안마당으로 들어가더니 안방 방문 앞에 이미 와있던 다른 관광객들의 다리 새를 비집고 방문 앞으로 나아가 고개를 들고 방안을 향해 계속 짖어댔다. 사람들은 웬 강아지인가 하고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런 중에 몇몇 관광객이 안방의 홍길동 전신 대형초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소리 질렀다.

“앗! 저 다리에 피!”

강아지는 강아지대로 짖어대고!

모두들 그가 가리키는 홍길동 초상을 보니 홍길동 전신초상의 왼쪽 다리에 붉은 핏자국이 마르지 앉은 상태로 번들거리며 선홍빛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는 게 아닌가!

아, 기이하다!

그 때 경찰관이 도착했다.

“아, 피다! 바로 저 초상 뒤에 숨었다!”하고 소리 지르자, 그 초상화의 홍길동은 눈 깜짝 할 새 사라지고 초상의 인물그림은 온데 간데 없고 허연 빈 바탕에 핏자국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어어? 홍길동이 사라졌네? 핏자국 만 남긴 채!”

많은 관광객이 깜짝 놀라 소동을 피웠다. 그나저나 참, 이상하지? 벽에 붙어 걸린 납작한 초상화 그림 속으로 어떻게 홍길동이 숨어들지? 과연 둔갑술인가?

“아니, 저 피는 웬 거요?”

“아, 이럴 수가! 그림에 피가 나다니?”

“어떻게 된 영문이오?”

“아까 피 흘리며 쫓겨온 홍길동이 저 그림 뒤에 숨었다가 도망친 모양이오.”

“아니....그렇다면 아까 까지 있었던 초상 그림은 어디가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진짜 홍길동인가...?”

이렇게 수군거리며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다.

그 때까지 짖어대던 강아지는 다시 뒤로 빠져 나와 마을 아래쪽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를 본 강아지 임자도 경찰관도 땀을 뻘뻘 흘리며 뒤따랐다. 이윽고 강아지는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관광객들도 따라 움직였다.

홍길동 생가를 떠난 홍길동은 강아지에게 쫓겨 가까스로 주차장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강아지는 피 냄새를 맡으며 코를 땅에 대고 계속 찾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여기 저기 사람들이 몰려들고 강아지 임자와 경찰관도 결국 주차장에까지 이르렀다. 그때까지 강아지는 어느 검정색 승용차 앞에와서 계속 멍멍 짖어댔다. 진짜 홍길동의 피가 승용차 앞와서 사라지고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즈음엔 축제는 이미 파장되고 서울 부산 등 먼 곳에서 온 차들이 떠나고 주차장도 수라장이 돼버렸다. 윤서네 가족도 아빠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들어서니 웬 일인지 자기네 차를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선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다가갔다.

“선생께서 차주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지요?”

“예, 아시다시피 방금 전에 무대에서 쫓긴 홍길동이 피를 흘리며 홍길동의 생가에까지 갔다가 강아지에 쫓겨 예까지 와서 없어졌거든요.”

“에, 그래서요?”

“이 강아지가 줄곧 핏자국을 따라 여기 까지 왔는데, 그만 홍길동이 없어졌단 말입니다.”

“아, 그래요? 그걸 어떻게 알고... 우리와 무슨 상관이라도 있단 말입니까?”

“아, 그런 게 아니고... 이상해서 말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없어졌으니 혹사라도... ”

“그것 참, 저도 아까 쓰러진 허수아비 홍길동을 보고 오는 길입니다만, 그 도망친 홍길동이 혹시 진짜 홍길동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 사람이 피를 흘리며 여기까지 왔다 그 말입니까?”

“예, 우리 강아지가 피 냄새를 맡고 여기 까지 뒤쫓아 왔는데, 여기 차 앞에 와서 그만 사람이 감쪽같이 없어졌거든요?”

’멍 멍 멍...‘

강아지 임자 아가씨가 강아지를 안고 의아하니 말하는데 강아지는 주인 품에 안겨서도 계속 짖어댔다.

차주와 윤서네 식구들도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하며 문제의 강아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무슨 낌새를 찾을 길은 없었다. 더더군다나 차 속에 아무 것도 없는데 뭘 찾는다는 건지...

“저, 혹시 이 차 트렁크를 좀 열어 보여주시겠습니까?”

경관이 머리를 갸웃하더니 기어코 여기 트렁크 속에 범인이 숨어들었나 하고, 좀 보 싶다고 요청했다.

차주가 뒤 트렁크를 열며

“자, 보십시오. 여행 장비뿐입니다만, 이왕 열었으니 자세히 보십시오.”

“아, 아닙니다.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경관이 초동수사 자료로 차번호( 6143 )와 차주 이름 정건주까지 적고 물러갔다.

*초동수사 : 사건 발생 직후에, 범인을 검거하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긴급 수사 활동.

 

그러나 강아지는 강아지의 임자 품에 안겨서도 절대 물러 설 수 없다는 듯 짖어댔다. 언제 왔는지 텔레비전 카메라도 계속 돌아갔다.

꽤 악바리 같은 강아지를 보며 윤서네 집 식구들도 아무 낌새를 채지 못한 채 차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그 때까지도 주차장과 홍길동 생가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방금 사라진 피 흘리는 홍길동에 대해 떠들며 화제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윤서네도 참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지만 아무런 단서를 잡을 수 없었다. 다만 윤서만이 이 문제와 자기 책에서 도망친 홍길동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탐정처럼 다른 각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피 흘리던 홍길동이?

‘가만 있자...그러면 ? 혹시...?’

이렇게 생각한 윤서는 부리나케 배낭을 찾았다.

윤서네 차가 장성 시내를 벗어나 호남 고소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국도로 접어들었을 때다. 어디선가

“윤서야! 윤서야! 나 좀 살려 줘...”

하는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그 때 길동이 부르는 소리를 이번에도 곁에 앉은 동생 꽃지가 먼저 듣고 의아해서 소리 질렀다.

“오빠! 누가 불러!”

‘뭐?, 누가 불러? 혹시?...’

윤서는 얼른 홍길동 책을 꺼냈다.

윤서는‘소년 홍길동전’의 아무 갈피나 열었다. 거기에는 홍 판서가 아들 길동을 꾸짖는 그림이 실려 있었고 다음에 연 페이지에는 무당이 눈을 흘기며 곡산댁 초란과 음모를 꾸미는 장면이 이상 없이 실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윤서는 길동이 구름을 타고 날아갔던 88 페이지를 열었다.

‘이하! 과연...길동이 돌아왔군! 무대에서의 소란도 길동의 짓이었구나! 으음...’

그 때 옆에서 책을 훔쳐보던 꽃지가 또 소리 질렀다.

“어머! 오빠 책에 피!”

꽃지가 놀라는 소리를 들은 앞 조수석의 어머니가 뒤돌아보았다.

“...... ?”

거기 그림에는 홍길동이 늠름하니 구름 위에 버티고 섰는데 왼쪽 다리에서 정말 선홍색의 피가 조금 내비치고 있다.

‘아, 진짜?! ’윤서는 놀랐다.

‘이럴 수가! 책에서 피가 나다니?’ 그는 설마 하면서 길동을 불러보았다.

“길동아!”

“...... .”

책의 그림은 아무 응답이 없다. 책의 그림 속에 숨은 길동은 너무 아파 오만상을 찌푸리며 참고 있다. 대답을 할까 말까? 그러나 지금 여기서 스스로 소리 내어 나타날 수도 없고,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개 이빨 독이 올라 무척 아픈 모양이다. 이렇게 상처를 입으면 홍길동의 나라 율도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길동은 큰 고민에 빠져있다.

홍길동은 400 여 년 전 사람으로 저승 사람인데 둔갑술을 부려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고 있는 경계국 사람이라 이승에서 진짜 상처를 입었다면 이승의 경계를 벗어나 영혼의 나라, 저승으로 갈 수 없다. 여기서 입은 상처는 여기서 치료하여 깨끗이 나아야만이 하늘나라에도 갈 수 있고 율도국에도 갈 수 있다. 길동은 정말 큰 고민에 빠져있다. 지금 계속 피는 나고 독이 올라 점점 부어오르니 어떻게 하지? 그 때 윤서가 한 번 더 불러 보았다.

“길동아! 안 아파?”

“...... .”

그래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피는 점점 더 내비치고 있다.

“오빠! 길동이 오빠 몹시 아프겠다!”

이때, 길동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느라 가는 신음소리를 냈다.

“으윽...끼이잉!‘

귀 밝은 꽃지가 이 소리를 듣고 귀를 쫑긋하며 기울였다. 그 때 또

‘끼이잉~ !’하는 소리를 듣곤

“어어? 오빠! 무슨 소리 안 들려?”

“뭐가, 어디이?”

“길동이 오빠가 너무 아파서...”

“뭐...? 길동이? 어이, 이봐! 길동아, 대답 좀 해봐!”

너무 아파 참다 참다 못 참은 길동이 대답을 했다.

“으응, 윤서야!”

“뭐? 정말 나, 불렀어?... 길동아!”

“응, 나 홍길동이야!”

“홍길동?!”

“응, 그래. 반갑다, 윤서야!”

“네가 정말 길동이냐?”

“응 나, 진짜 홍길동!”

“오빠, 정말 홍길동 오빠야?”

뒷좌석의 아이들이 두런거리는 대화소리를 들은 아빠가 운전대에서 눈을 떼지 앉은 채 백미러로 흘금 살폈다. 그 때 꽃지가 소리 질렀다.

“엄마, 홍길동 오빠 다리에 피!”

꽃지 어머니 김동주가 대수롭잖게 생각하며 뒤돌아보았으나 아이들이 장난으로 하는 소리인줄 알고 다시 앞을 응시했다. 아이들 소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에 묻혀 어른들 귀에는 잘 들리지 않고 있다.

“얘, 길동아! 아프겠다.”

“응, 무척 아파. 자꾸 피가 나서... 윤서야 좀 치료해 줘”

앞 좌석의 윤서 부모는 그때까지 아이들이 책을 보며 서로 주고받는 소꿉놀이를 하나보다 했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윤서는 휴지로 동화책에 묻은 핏자국을 씻어주었다. 휴지에는 정말 선홍색 피가 묻어났고 종이 그림에는 순간 피가 닦여 없어졌다. 그러나 좀 지나니 다시 피가 조금씩 내비치기 시작했다. 핏자국이 난 책의 종이는 젖어서 약간 부풀어 올라 두터워진 느낌이다.

“윤서야, 고마워. 그러나 자꾸 피가 나서...”

휴지로 닦은 자리에 다시 피가 내비쳐 번들거렸다.

“길동아, 어떻게 하지.. ?”

“하는 수 없구나. 절대 비밀로 해줘... 내가 나가야겠어.”

“그래, 염려 마, 비밀... 알았어. 그래, 어서 나와! 제대로 약을 바르고 싸매야겠어. 어떻게 나올 수 있어?”

“응, 걱정마, 이렇게 나오면 돼.”

그새 홍길동은 꽃지와 윤서의 사이에 의젓하니 나와 셋이 나란히 앉았다. 길동이 꽃지와 윤서의 어깨에 양팔을 걸고 어깨동무를 한 모습으로.

실물 홍길동을 본 윤서 남매가 ‘설마?’ 했다가 정작 합석을 하고 보니 너무너무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

“아빠, 엄마! 여기 홍길동 왔어요.”

윤서가 소리 지르자 앞좌석의 부모도 돌아보고 더 깜짝 놀라 윤서의 아버지는 그만 차 핸들을 잘못 조작해 차가 조금 휘청하니 어긋나며 하마터면 사고를 낼 뻔했다. 뒤따르던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느라 끼익! 하는 소리를 내더니 거리를 조정했다. 그리고 경적을 빵빵 울리며 앞질러 갔다. 윤서 아버지는 뒤차 운전자에게 미안하다는 표시로 차창 밖으로 왼손을 내밀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갑짝스런 홍길동의 출현은 윤서네를 적잖이 놀라게 하여 까무러칠 뻔했다.

아니, 장성 주차장에서 없어졌다던 그 피 흘리던 홍길동이 정작 나타나다니? 그렇다면 진짜 홍길동인가? 윤서의 아버지는 그만 정신이 휑하니 나간 듯해 얼른 황색 경고들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는 얼른 뒤돌아보더니 정작 길동을 보고 정말 의아해 입을 딱 벌렸다. 흡사 홍길동 캐릭터의 앙증맞은 어린이 홍길동 차림으로 키도 윤서 만 한 초등학생 소년 홍길동이었다.

 

 

‘응음... 경찰이 찾던 홍길동이 정말 여기에 나타나다니!’

트럭이 먼지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홱홱 지나쳤다. 그 새 길동은 윤서의 손을 덥석 잡으며

“너무 놀라지마. 나도 좋은 친구야. 너와 똑같은 아이란 말이야. 그래, 우리 서로 친구 하자. 절대 비밀로 해줘. 난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의 진짜 소년 홍길동이야.”

이렇게 소년 홍길동이 자기의 신분을 밝히니, 그제야 윤서도 마음을 놓으며 마주 보고 웃었다. 그리곤 길동의 손을 꼬옥 잡고 서로 흔들었다. 또래 아이들은 이렇게 쉬 친해지는 모양이다. 비로소 윤서도 마음 문을 열고 벌써 전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 사이 같았다. 윤서의 손을 놓은 길동이 꽃지의 예쁜 볼을 손으로 만져주었다. 그때 차를 세운 윤서 아버지는 얼른 뒤 트렁크를 열더니 빨강 삼각대 안전표지를 멀찍이 갖다 세워놓고 트렁크 문도 닫지 않은 채 돌아와 허리를 굽혀 차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넌 정말 장성 무대에 섰던 홍길동이냐?”

윤서의 아버지도 진짜 홍길동으로 믿지 않고 물은 말이다.

“네, 안녕하세요? 전 윤서 친구 진짜 홍길동이에요.”

홍길동의 차림새를 훑어보고 섰던 윤서의 어머니도 하도 놀라 어안이 벙벙해 섰다.

“얘들아, 잠깐 내려와라!”

꽃지랑 아이들이 모두 차에서 내렸다.

“너, 정말 강아지에게 물려 쫓기던 홍길동이란 말이지?”

윤서 아버지는 이렇게 의아해 물으면서 길동의 머리를 쓰다듬곤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이며 실물을 확인이라도 하듯 톡톡 쳤다.

‘어어? 촉감은 여느 아이들과 같은데? 옛날 사람 같진 않고, 의상은 옛 조선시대 홍길동 도련님 차림에...?’ 윤서 아버지는 이렇게 나름대로 생각하며 길동을 훑어보고 섰다.

“예, 그렇습니다. 전 본시 율도국의 진짜 소년 홍길동으로 윤서의 동화책에서 몰래 숨어 있었는데 요번에 장성땅 저의 고향에서 축제가 있다고 해서 갔다가 그만 ..... . 요건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홍길동이 자세한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비밀을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자초지종 - 처음부터 끝까지 이르는 동안 / 또는 그 사실

 

“아, 그랬었구나. 진작 윤서와는 이미 친구였단 말이지?”윤서 아버지가 이제 이해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윤서가 금방 되받아 보충 설명을 했다.

“네, 엄마! 얘가 지난번 엄마가 부침개 부쳐주던 날 꿈에 처음 만났어요. 그 후 구름을 타고 날아갔어요. 삽화 그림에서 길동이가 아예 없어졌기에 난 그 때 내 책이 잘못 인쇄되었나 싶어 서점에 가서 새 책으로 바꿔오기까지 했어요.

*삽화 - 내용의 이해를 돕거나 보충 설명을 위해 책이나 신문, 잡지 등에 끼워 넣는 그림

 

그 때 내가 꿈에 헛소리로 ‘길동아 어디가아! ’하고 소리 지를 때 엄마가 날 깨웠잖아요?”

윤서의 어머니는 그러고 보니 그 날 윤서가 헛소리를 하고, 또 길동이 이름을 부르며 밖을 내다보곤 하던 모습을 떠 올렸다. 윤서 어머니는 이제 약간 감이 잡혔다. 그래도 그렇지, 20세기에 인간이 달나라에 다녀온지도 40년이 흘렀고, 21세기 첨단 과학이 화성으로 달리는 이 때 몇 백 년 전 홍길동이 책 속에서 나오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윤서 부모도 의아해 하면서 우선 피 흘리는 홍길동이 측은해 '이럴 수가!'를 연발하며 윤서 책의 빈 그림을 보곤 또 길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

“얘, 길동아! 어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디 다리 좀 보자.”

윤서 어머니는 얼른 야외용 깔개를 내다 펴고 길동을 자리에 앉혔다. 그 새도 고속도로에는 바람을 일며 각종 차들이 쌩쌩 지나갔다. 그때 하늘에는 웬 헬리콥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윤서의 어머니는 여행 가방에 넣고 다니던 비상 약상자를 꺼내놓고 상처를 살폈다. 그 동안 개 이빨 독이 퍼져 퍼렇게 부었고 아직도 아래 위 두 개씩 네 개의 이빨자국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과산화수소(소독약)를 묻힌 탈지면으로 피를 닦아내고 소독했다. 그리고 상처에 바르는 후*딘 연고를 바르고 중형 대일 밴드로 응급처치를 끝냈다.

“윤서 어머니 고맙습니다.”

“고맙긴... 아무 탈 없이 아물어야할 텐데. 독이 삭고 부기가 빠져야지..... 쯧쯧쯧...”

다행히 홍길동의 상처는 그리 심한 편은 아니어도 개 이빨 독이 얼른 삭아야할 텐데 조금은 걱정이 됐다. 상처는 임시 응급처치로 끝냈다. 길동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이중 인간이므로 이승에서 당한 상처는 여기서 치료하지 않으면 경계 국인 율도국으로 갈 수 없다. 개에게 물리는 사고만 아니었으면 그냥 윤서의 동화책을 통해 율도국으로 사라져버리면 그만이었을 텐데...

 

 

윤서네가 길동의 상처 다리의 응급처치를 끝내고 차에 오르려고 할 때 갑자기 하늘에는 일곱 개의 짚 인형들이 기러기 떼처럼 줄 맞춰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게 보였다. 맨 먼저 꽃지가 이를 발견하고 소리 질렀다.

“오빠, 오빠! 저기 헤리포더!”

“뭐! 헤리포더?”

그 소리에 놀란 길동이 하늘을 쳐다보니 정말 맨 앞의 헤리포더는 보이지도 않고 빈 빗자루만 앞장서고 일곱 개의 짚 인형들이 줄 맞춰 빗자루를 타고 머리 위로 지나고 있다.

“어어? 저건 내 부하들인데...... .”

그 때 홍길동이 재빠르게 알아채고 둔갑술을 부려 얍! 하고 기합을 넣었더니 갑자기 짚 인형 일곱개가 곤두박질치며 고속도로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아, 이럴 수가!

금방 고속도로 여기 저기 바닥에 툭 툭 둔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짚 인형들은 쌩쌩 달리는 각종 자동차 바퀴에 짓밟혀 부셔지며 짚북데기 먼지를 피우더니 천지사방으로 흩날리고 있다.

그 와 동시에 나중에 떨어지던 일곱 개의 빗자루는 거의 고속도로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다시 공중으로 떠오르며 따라 올라가고 일부는 달리는 자동차의 지붕이며 앞 유리창에 부딪치기도 하여 어떤 차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다시 하늘로 떠올랐다.

아, 저런!

이 광경을 목격하고 놀란 자동차들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느라고 귀 찢어지듯 삐익- 소리를 내며 멈춰서다가 약간의 추돌 사고를 일으키며 그 일대에는 수많은 차들로 즐비하니 늘어서고 말았다. 바닥에는 때 아닌 타작마당처럼 짚북데기가 널린 채.

그 와 때를 같이해 하늘에는 난데없는 헬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빙빙 돌며 하늘에서 호위했고, 다시 하늘로 빨려 올라간 일곱 개의 빗자루는 떨어지다 만 나머지 한 개의 빈 빗자루와 함께 8개가 줄맞춰 마냥 날아 서편하늘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빈 빗자루만 하늘로 날아가다니? 수많은 차의 사람들이 목격하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는 마법을 부린 헤리포더의 농간이었다. 홍길동의 둔갑술에 걸려 땅으로 곤두박질 친 짚 인형들은 모두 땅바닥으로 떨어졌지만 헤리포더는 곤두박질치면서도 마법으로 맞서 떨어지지 않고 빗자루를 꼭 잡고 도망친 때문이었다.

그 때까지도 웬일인지 하늘의 헬기는 이들의 머리 위를 맴돌며 낮게 돌고 있었다. 드디어 도로 막힘이 풀리며 자동차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서네도 길동의 다리 치료를 끝내고 승용차에 올랐다. 이들의 승용차가 뜨자 헬기도 계속 이 승용차를 호위하듯 뒤따르고 있었다. 윤서 아버지는 차를 몰면서도 방금 일어난 하늘로 날아가는 빗자루며, 땅으로 곤두박질 쳐 부셔진 짚인형들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어쩜 그리도 멋지게 하늘을 날 수 있으며, 장성 무대에 널브러졌던 짚 인형과 하늘에서 떨어져 박살나 흩어진 짚북데기 광경을 목격하곤 아직도 의아함이 가시지 않고 있다. 윤서 어머니도 그렇지만 윤서 아버지는 운전을 하면서도 오늘 일어났던 기적 같은 사건들을 정리하듯 하나하나 떠 올리며 이 모든 사건들의 괴이한 현상에 대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정신이 휑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