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또 다른 홍길동 후보가 등단
이렇게 각 시. 도의 홍길동 8명이 이제부터 각기 자기들 시 ․ 도를 대표해 장기 자랑과 특기를 발표하고 제일 잘한 도의 홍길동을 오늘의 챔피언 홍길동으로 선발한다는 진행자의 설명이 막 끝나려하는데 난데없이 또 다른 8명의 홍길동이 무대 옆의 출입문을 통해 주욱 나타나더니 이미 등단한 8명의 홍길동의 뒤로 짝지어 늘어섰다. 모두 두 줄로 열여섯 명으로 늘어섰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측은 관객이 아니라 사회를 맡은 사람과 본 축제를 마련한 본부 쪽이었다.
관객들이야 프로그램에 있는 순서대로 또 8명의 홍길동이 나오나보다 했지만 본부 측이나 사회자는 예정에도 없는 낯선, 그 옛날의 활빈당 홍길동과 꼭 같은 멋진 소년홍길동 여덟이 나타나자 의아하게 생각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제까지 앞에 나선 각도 홍길동보다 더 멋지고 진짜 그 옛날의 홍길동과 꼭 같은 차림의 홍길동 8명이 쌍둥이처럼 새로 등장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 옛날 조선시대 홍길동의 초립에 두건까지 이마에 칭칭 동여매고 남색 도포에 짚신까지 신고 나타났으니 정말 볼 만 하기도하고 무대가 온통 환해 축제 분위기를 한껏 높이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지금 많은 관중들을 앞에 앉혀 놓고 있는 이 마당에.
‘어어?, 여 여보시오. 그대들은 누구요?’ 하고 물리칠 수도 없고... 어느 도에서 숨겨두었던 홍길동을 주최 측에 알리지도 않고 깜짝 쇼를 하기 위해 막간에 살짝 끼어 넣었나보다 하고 생각한 주최 측이나 사회자가 서로 눈을 맞추더니 그냥 진행하기로 해 사회자는 의젓하게 순서에 따라 진행해 나갔다.
“에, 지금부터 8도 홍길동 16명이 이렇게 여러 가지 의상과 장식을 하고 등단해 줄지어 섰습니다. 아,여러분! 어때요? 보기 좋지요?
네.-------
자, 이제부터 각도의 홍길동들은 제각기 자기네가 가지고 있는 계획된 프로에 따라 각기 재주를 부리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음악이 나오면 음악에 맞춰 자기 나름의 특색 있는 춤을 추기로 하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확성기에서 경쾌한 음악이 꽝꽝 울려퍼지자 각도 홍길동들은 이 곡에 맞춰 이상한 몸짓을 하며 별의 별 춤사위가 벌어졌다.
*춤사위 - 민속무에서, 춤의 기본이 되는 낱낱의 일정한 동작. / 사위, 춤동작
특히 나중 나타난 홍길동 8명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멋진 몸놀림과 동작으로 관중들의 인기를 독차지했고 야구 경기장의 치어걸처럼 흩어짐 없이 하나같은 몸짓으로 어느 것이 진짜 홍길동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춤을 추어댔다.
*치어걸 -운동 경기에서, 응원을 맡아 하는 여자 단원.
우와아 — 짝짝짝...
사회자의 코멘트도 없는데 흥분한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다.
이윽고 음악이 딱 멈추자 이들 홍길동들의 춤동작도 동시에 딱 멈추고 금방 사회자의 안내 말이 이어졌다.
“예, 대단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정말 멋진 장면이지요?”
이 말이 떨어지자
우와 --
하며 또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이때 처음부터 멋진 순간을 놓칠세라 TV 3사의 카메라가 때를 놓치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예,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여기 열여섯 명의 홍길동 중에 어느 홍길동이 가장 춤을 잘 추었고, 또 어느 홍길동이 가장 진짜 홍길동과 닮았는지, 특별히 초청된 어린이 심사원이 올라가 심사하는 순서를 가지겠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이미 프로그램에 따라 예쁜 색동저고리를 입은 깜찍한 남녀 어린이 심사원 둘이 올라갔다.
이 어린이 심사원은 열여섯 명의 홍길동의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저 나름으로 멋진 홍길동을 찾아 심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 순간!
관중석에서 어느 관객이 안고 있던 하얀 애완용 강아지가 쏜살같이 무대로 올라갔다. 작은 이 강아지를 본 모든 관객의 눈이 그만 강아지에게로 쏠리고 잠시 강아지가 주인공이 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갑작스런 강아지의 등장을 어느 누구 하나 제지하지도 않고 보고있다.
그 때 그 강아지는 내가 진짜 홍길동을 찾는다는 듯 코로 냄새를 쿵쿵 맡는 시늉을 하며 한 바퀴 돌더니 나중 나타난 뒤의 홍길동 중 어느 한 홍길동의 다리를 꽉 물어뜯었다.
‘아얏!’
뜻하지 않은 순간, 강아지에게 물린 홍길동이 얼마나 깊이 물렸던지 ‘아얏!’ 하고 제자리에서 팔닥팔닥 뛰더니 비명을 지르며 무대 옆 출입문으로 절뚝거리며 내뺐고 강아지는 강아지 대로 계속 짖으며 뒤쫓아 갔다.
그 때, 일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들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나중 나타난 여덟 명의 홍길동 중 나머지 일곱 명의 홍길동들은 갑자기 맥없이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피식 피식 쓰러지고 말았다.
아, 이럴 수가!
그런데 기이하게도 쓰러진 나머지 일곱 명의 홍길동은 순간 모두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인형 홍길동으로 변해 누워 있는 게 아닌가! 허허, 참. 하늘의 이변이로다!
아, 이럴 수가! 아, 정말 기이하다! 살아서 춤까지 추던 사람이 짚으로 변하다니!
이 순간을 놓칠 세라 TV카메라는 특종을 잘 만났다고 계속 돌아가고...
홍길동전에 나오는 팔도 홍길동이 대궐로 잡혀 들어가 어전 뜰 앞에 묶인 채 서로 소인이 진짜 홍길동이라며 내세우다 진짜 홍길동이 구름을 타고 사라지자 나머지 홍길동은 모두 허수아비 짚인형으로 쓰러져 있더라는 소문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으니....
그러는 사이에도 멋진 장면을 놓칠세라 TV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가 사르르났다. 관중은 물론 사회자나 주최 측도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강아지 임자도 강아지를 따라 뒤쫓아 갔고 주변경계를 섰던 경찰 또한 임무수행으로 도망친 홍길동을 잡으려고 뒤따라 무대 뒷문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는 사이 무대 앞에서는 뒤늦게 웅성거리며 예상외의 깜짝 쇼가 너무도 황당해 어리벙벙해‘ 이럴 수가!’를 연발하며, 입을 딱 벌린 관중들은 어찌 짚 인형이 진짜 사람처럼 춤까지 추다가 짚으로 변해 쓰러졌으며, 진짜 도망간 그 한 사람의 홍길동은 누구인지 궁금해 안달이었다.
그러다가 그만 그날의 축제는 끝도 맺지 못하고 관중들이 천지 사방으로 흩어져 수라장이 돼버리고 도망친 그 사람이 진짜 옛날 구름을 타고 나타난 그 홍길동이 아닌가 하는 억측까지 자아내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은 무대 위로 올라가 짚 인형을 만져 보기도 했다.
“어어? 진짜 짚이잖아?”
“그렇구먼.”
이렇게 수군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머리를 갸웃하고 있다.
“아, 여기 피!”
그 때 무대 위의 짚 인형을 만져보고 돌아서던 사람이 도망친 홍길동이 섰던 자리에서부터 무대 뒤 옆문 쪽으로 띄엄띄엄 떨어진 핏방울을 가리키며 놀라 소리 질렀다. 그 바람에 무대에 올라왔던 다른 사람들도 그 핏자국을 보고 놀라 어리둥절하고 있다.
“아니, 그러면 그 사람은 진짜 홍길동인가? 짚은 아니고?‘
“아니, 그럴 수가? 아니, 몇 백 년 전 홍길동이 살아 올리도 없고, 그 사람은 어떤 마술사이거나 이 짚 인형을 만든 주인이겠지...?”
“그런데 어찌 아까 까진 짚 인형이 그렇게 멋지게 춤까지 출 수 있었단 말이오? 마술인가?”
“글쎄? 여하튼 짚은 짚이고, 이렇게 피까지 흘리며 도망친 것을 보면 짚은 아니고 사람은 사람임에 틀림없잖소?”
“암, 맞아요. 마술이든 아니든, 사람은 사람임에 틀림없구려.”
이렇게 몰려들어 웅성웅성 떠들고 있을 때
순간!
무대위에서는 또 놀랄 일이 벌어졌다. 이 때 무대 위에 난데없는 빈 빗자루 여덟 개가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쓰러져 있던 짚 인형 일곱 개를 태우곤 밖으로 날아나가는 게 아닌가! 아 신기하고 기이하다! 정말 서쪽 하늘로 헤리포더 처럼 줄 지어 날아가는 게 아닌가! 실로 눈깜짝할 새의 일이다.
“어어? 아니, 이럴 수가! 짚 인형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다니?”
“맨 앞의 빈 빗자루 하나는 또 뭐냐? ”
“그럼, 헤리포더가 데리고 갔단 말인가, 빗자루를 타고?”
“아니, 살아있는 동물도 아닌 무생물 허수아비 짚 인형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다니...”관중들은 이렇게 떠들며 어안이 벙벙해 야단법석이다.
홍길동의 마을 장성 땅에는 오늘 하루 이렇게 기이한 하늘의 기적이 연달아 일어나
관중들은 뜻하지 않게 실감나는 즐거움을 맛보며 난리를 쳤다. 이렇게 떠들다가 홍길동축제는 저절로 막이 내려지고 이렇게 순간순간에 축제보다 더 기이하고 재미있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관객들은 오히려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화제가 만발하고 있다.
주최측에서는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