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콩쥐팥쥐 정자 앞에서 홍길동과 헤리포더

 

윤서의 홍길동 전 책속에서 벗어난 홍길동은 모처럼 구름을 타고 여기저기 고향산천을 두루 살피며 전라도 땅에 들어섰다. 벌써 모내기를 마쳤거나 모내기를 하고 있는 호남평야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길동이 살았던 예전엔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고 흙만 파먹어도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웠었는데, 야들야들한 연초록의 질펀한 풍요로운 들녘을 보니 저절로 배가 부른 듯하다.

 

구름을 타고 고향하늘을 날던 길동이 여기가 어딘지 발아래 고향땅 마을을 내려다 보니 정자 앞에 웬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게 예사롭지 않았다. 하늘에 구름탄 사람이 날아다니는데도 마을사람들은 자기들 볼일에 정신을 팔고 있어 아무도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도 없고 더군다나 구름 탄 홍길동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길동은 여기 모인 사람들이 궁금해 투명 둔갑술을 부려 땅으로 내려갔다. , 콩쥐 팥쥐? 어어? 내가 어려서 들었던 전설을 다시 꾸민 정자인가? 길동은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정자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도 아무도 알아채는 사람이 없었다. 투명술을 부린 길동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 리 없었다.

 

여기는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인데, 가만히 얘기를 듣고 보니 앵곡마을 콩쥐 팥쥐 전설이 서린 곳이란다. 마을이 온통 콩쥐팥쥐 벽화로 단장된 동화같은 관광마을이다. 마침 딴 고장 사람들이 관광 와서 이 마을 김성례 할매 한테 콩쥐 팥쥐 이야기를 듣고 있다. 길동이 가까이 다가가도 눈치 채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다. 호기심이 동한 길동이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듣고 있다.

 

 

 

 

저그가 콩쥐 도와주었든 두꺼비가 태어난 두방 두죽제여. 저 연못 말이여. 이짝으론 쇠아칫골인디...”

 

, 송아지 허리 닮았다는 고개가....”

 

어느 관광객이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할매가 금방 입을 열었다.,

 

, 그려. 송아지 허리 닮언 쇠아칫골이여. 거그서 시방 농사는 딸딸이가 허제만, 그 땐 콩쥐가 쇠아칫골 땡뺕에 앉아 나무 호맹이로 밭을 갈라믄 을매나 심들었거시여. 기모 헌테 혼나 가믄서... 쯧쯧쯧...”

 

김성례 할매 이야기를 듣고 섰던 관광객들이 고생한 콩쥐 생각을 하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동은 그 옛날 구수한 고향사투리를 듣곤 그리움에 사무처 한참 바라보고 섰다가, 다시 재 너머 장성호 쪽으로 날아갔다.

 

 

 

 

윤서네 차도 장성 가까이 들어섰다. 가는 곳마다 홍길동 축제 포스터가 윤서의 눈길을 끌었다. 뜻밖에 윤서가 생각하고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 아빠! 이제 알겠어요. 홍길동 생가를 둘러보러 가는 거지요? 홍길동 축제도 겸해서...“

 

어떻게 알았니? 우리 윤서도 제법인데...”

 

, 별거 가지고 그러세요? 저어기 보세요. 홍길동 축제 포스터....”

 

, 그렇구나. 축제.... 재미있겠지?”

 

, 재미있겠어요. 그러잖아도......”

 

그는 홍길동이 구름을 타고 도망친 얘기를 꺼낼까 하다가 꾹 참았다. 그는 홍길동 소설책을 넣고 온 배낭을 손으로 꾹꾹 눌러보며, 길동이 고향에 간다고 했는데, 혹시 생가에 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 까하는 가당치도 않은 생각을 했다.

 

몇 백 년 전 홍길동이 책 속에서 나와 도망치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사람이 달을 정복한지도 벌써 50년 전이고, 우리나라 농업 기술만 하더라도 5 년생 가지나무에서 가지가 주렁주렁 열리고, 땅속에는 감자이고 줄기에는 토마토가 발갛게 열리는 21세기 첨단 생명 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이때에 조선 중기의 홍길동이 나타나, 그것도 소설 책 속의 삽화에서 쏙 빠져 나와 구름을 타고 날아갔다는 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윤서가 이렇게 골몰하고 있을 때 윤서네 차는 어느새 장성 땅에 들어섰다. 장성은 온통 홍길동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어서 여기가 과연 홍길동의 고향인 것을 실감케 했다.

 

사실 윤서는 홍길동이 실제 인물인 것도, 홍길동이 장성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몰랐었는데 우연히 어린이 신문을 보고 알게 되었다. 윤서는 지난 번 홍길동전을 보다가 놓친 홍길동이 구름을 타고 날아간 사건에 대해 늘 마음속에 의문을 품고 지내오던 터다. 그래서 그는 홍길동 그림이 없어진 소설책을 보물처럼 안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