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현충사 와 한산도
이윽고 고대하던 현충사가 보였다. 옛 조상들이 명당이라 말하는‘좌청룡우백호에 배산임수’라는 명당자리답게 삼면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싼 아늑한 양지쪽 자리에 소나무 푸른 숲이 우거지고 앞쪽으로 실개천이 흐르는 현충사의 위치부터가 선열을 기리기에 아주 알맞은 곳이었다.
*(좌청룡우백호, 배산임수 : 남쪽을 바라보고 뒤와 좌우 삼면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고 앞이 훤히 트이고 시내가 흐르는 위치로, 집터나 산소자리로 명당을 이르는 말.)
*선열 -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은 열사.
이 현충사도 예전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던 곳을 박정희 대통령 때 국가적 사업으로 성역화하여 아름답게 꾸며 오늘날과 같이 화려하고 경건하게 정비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됐다.
*성역 : 엄숙하고 신성한 지역
입구에 들어서니 바로 이순신장군 기념관이 보였다. 경내에는 이순신 장군의 고택(옛집), 정려, 거북선 모형. 조선의 화포, 충무공의 난중일기 등 유물이 잘 전시돼있었다.
*정려 -예전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을 이르던 말
그리고 이순진 장군이 살았던 옛집을 지나 그 위쪽에 장군의 윗대 조상들 묘소와 어려서 무예를 닦았던 활터가 있었다. 맨 위쪽에 충무공의 아들 면의 무덤이 있다.
윤서는 교과서에서 배운 충무공의 셋째 아들 면의 무덤 앞에서 더 감개무량하여 머리를 숙여 묵념을 올렸다. 왜놈들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 당하고 사로잡지 못한 분풀이를 어린 아들 면을 잡아 볼모로 하여 그 아비 이순신을 잡으려고 갖은 사탕발림으로 꾀고 하다하다 안되어 당장 목을 벤다고 협박하여도 듣지 않자 오른 팔 하나를 잘라냈고, 그래도 항복 않자 나머지 왼팔까지 잘라내고도 끝내 항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를 살려놓고는 한 발작도 여기를 떠나지 못하리라!”
이렇게 마지막 기개 넘치는 함성을 지르고 끝내는 목이 잘려 순국한 그 장군에 그 아들의 최후를 생각하며 윤서는 눈을 감고 섰다. 그 때 그의 기개 높은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내려올 때 유물 전시관에 들어선 가족들은 장군의 여러 가지 유물들을 그가 살아 있을 때처럼 실감 있게 감상하며 다른 관광객들 뒤를 따라 돌며 줄지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빠, 아빠! 저것 봐! 우와아-”
야무진 소리로 꽃지가 소리 지르자 전시장 내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려 꼬마를 돌아보았다.
“응, 뭔데?”
꽃지 아버지도 꽃지가 가리키는 충무공의 장검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칼이 얼마나 큰지 길기도 하거니와 두께나 너비가 엄청 커서 정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장군 중에 장수여서 거인이었던가 알 수는 없으나 꽃지 아빠도 손아귀를 꽉 잡아보았다.
‘어쩌면 저리도 큰 장검을 한 손에 쥐고 휘둘러 왜놈들의 목을 한꺼번에 서너 명씩 무 베듯 베어냈을까?’
보물 제 326호로 지정된 충무공의 장검은 1594년 4월 충무공이 한산도 진중에 있을 때 ‘이무생’이 만든 칼이라는데, 칼 양날 옆이 서늘하도록 섬뜩하니 무지갯빛으로 아롱진 무늬가 흡사 용 비늘같이 칼끝에서 칼자루 앞까지 반달모양으로 연이어 비치고 있었다. ‘과연 명검은 어딘가 다른 데가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경내를 둘러본 윤서네 가족들은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를 뒤로 한 채 차에 올랐다. 운전에 정신이 팔려있던 윤서 아버지는 달리면서 뒤로 이순신 장군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흘렸다.
“윤서야 잘 들어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한 번 새겨 들어보련?
‘살고자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필생즉사必生則死, 필사즉생必死則生). 이 건 무슨 뜻인지 알겠니?”
“아빠, 물론이지요. 저만 살겠다고 쥐구멍을 찾아봐요, 결국 전쟁에 지고 나면 모두가 죽게 되지 않겠어요?”
“그래, 우리 윤서도 제법인데? 생각해보렴. 한 번은 장군께서 왜놈들의 배 133 척에 거북선 13척으로 대항해 크게 이겼을 적에 한 말씀이란다. 얼마나 장하냐? 이 때 이순신 장군은 전투에 임하기 전에 모든 부하 장수들을 모아놓고 명령을 어긴 장수는 군법회의에 넘겨 처벌하겠다며 독전하여 결국 대승을 거두었단다.”
윤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이순신 장군의 용기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했다.
“또 들어보련? ‘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감동하고(誓海魚龍動), 산천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盟山草木知)’ 아, 얼마나 구국정신이 투철했으면 이리도 돌덩이 같은 맹세를 했겠니?”
“예, 아빠! 정말 대단한 애국자이자 훌륭한 장군이군요.”
“이 말씀 끝에 ‘왜적을 다 무찌른다면 이 한 목숨 죽을지라도 사양치 않으리라.’ 하였다니..
이렇게 나라 위해 죽음으로 보답하겠다는 결사보국의 정신으로 명량해전을 앞두고 함상에서 손을 씻고 몸을 단정히 사린 후 무릎을 꿇고 하늘에 빌었던 거야.
*결사보국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는 굳은 결심
둥 둥 둥!... 우와 ~ ============================
썰썩 철썩 철썩 솨아 - 진군의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산더미 같은 파도가 뱃전을 치고 나갔다.
쌩! 씽! ...쌕- 휙! 화살이 날가가는 바람소리...
땅! 땅! 따 쿵!...조총소리...
불화살이 날아가고, 왜놈들의 조총 탄환이 날아오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인 노량해전의 성난 파도는 금방 왜선이고 거북선을 통째 삼킬 듯이 마구 흔들어댔다. 이에 앞서 진도 해협의 울돌목 명량해전에서 대패한 왜선 잔당들은 마지막 전열을 가다듬어 남해의 노량으로 몰려들었다. 왜놈이 탄 배를 향해 우리 수군이 쏜 불화살이 소나기처럼 날아가 배전에 꽂혔다. 또 왜군은 새로 개발한 조총까지 쏘아대며 우리 수군 거북선을 향해 돌진해 왔다.
둥 둥 둥! 와 와 와!
어느 쪽 북소리인지 독전하는 장군의 호령과 수병들의 함성이 뒤섞여 양편 수군의 화살과 조총 탄알이 비 오듯 날아갔다. 이윽고 서로 가까이 다가선 거북선과 왜선이 맞닿아 불화살에 박힌 왜선이 불타며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적의 함선에 오른 우리 수군이 때를 놓치지 않고 창칼로 적의 머리와 배를 갈랐다.
견디다 못한 불탄 배는 가라앉고 쫓겨 가는 배를 향해 거북선은 왜선의 배 꽁무니를 들이 받아 침몰 시켰다. 쫓기는 왜군은 우리 수군을 향해 조총을 마구 갈겨대고 우린 불화살을 마구 날려 보내 배에 불을 질렀다. 또 도망치는 왜선을 향해 거북선이 따라 잡아 들이 받아 침몰시키기를 수없이 하다 보니 어느새 왜선은 거의 전멸하고 그 때 마침 본국의 일본 지도자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자 사기가 꺾인 왜 놈들은 견디다 못해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그 때 뜻하지 않은 조총 한방이 이순신 장군이 탄 사령선으로 날아왔다. 아, 아깝도다. 애석하게도 이 탄환이 이순신 장군의 왼 편 가슴을 꿰뚫고 말았다,
“으윽!”
이순신 장군은 따끔한 충격을 받고 가슴에 손을 댔더니 뜨뜻한 붉은 선혈이 손가락 새로 주룩 흘러내렸다. 그는 그 순간을 병사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옆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더 큰 소리로
“쉬지 말고 북을 울려라!”
그리곤 부하 장수더러 군사들이 모르게 방패로 나를 가리라고 일렀다.
“앗, 장군님!
피 흘리는 사령관 이순신 장군을 본 부하 장수가 놀라 다가서자 손을 내저으며 “방패로 나를 가려라. 내가 죽었단 말을 하자말고 계속 북을 울려라!”이 게 마지막 유언이었다.
정헌대부를 거쳐 삼도수군통제사로 여러 해전에서 대승한 이순신장군은 마지막 노량 해전에서 적의 유탄을 맞자 이제 내 임무가 끝났다는 듯 조용히 눈을 감자, 몸종 김이, 맏아들 이회, 조카 이완이 한꺼번에 매달려 통곡을 하자 이문욱(李文彧)장군이 울음을 그치게 한 후 갑옷을 벗어 가리고 북을 치며 계속 독전하여 7년 임진왜란의 막을 내리게 한 1598년 11월 18일의 순간이다. 아 장하다! 그 이름 영원히 빛나리! 성웅,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탄이 장군의 가슴을 꿰뚫었지만 마지막 말씀은‘ 방패로 나를 가려라.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고 계속 북을 울려라.’ 고 하셨어. 우리 수군의 사기가 죽지 않게, 이 게 마지막 말씀이란다. 장군의 호령소리와 북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
“네, 정말 들리는 듯해요.”
“이 때가 왜놈들이 두 번째 쳐들어온 정유재란이며 7년 임진왜란의 막을 내리는 그 순간이었단다.
*정유재란 -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 휴전 교섭이 결렬된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