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홍길동 그림의 피 감정결과

한 편, 국립과학 수사연구소에서, 도망친 홍길동 다리의 핏자국 감정결과 장성 무대에서 채혈한 피 흔적과 홍길동 생가의 길동의 초상에 묻은 피를 감정한 결과 같은 B형 혈액형에다 진짜 사람의 피라고 하니 더욱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진짜 사람의 피라면 어느 사기꾼이 하는 짓임에 틀림없는데 그 재주가 너무 놀랍다.

홍길동 무대에서 강아지에게 물려 도망친 소년이 생가 벽에 납작하게 붙은 전신 초상화 속으로 사라졌다가 빠져 나간후 다리의 핏자국만 남긴채 초상화속의 홍길동은 사라지고 빈바탕에 핏자국만 남다니....?

수많은 관광객이 목격했고 TV 카메라에 잡힌 홍길동은 어디로 샜다는 말인가? 또 하늘에서 떨어졌던 짚 허수아비와 빈 빗자루가 줄지어 날아갔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홍길동 소년이 분명 검정색 승용차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시민도 있었고, 관광객의 캠코더에도 윤서네 승용차까지 와서 사라진 모습이 생생하게 TV에 소개까지 됐는데 정작 사람은 없으니 이상했다. 우주를 무대로 뛰고 나는 첨단 과학 시대에 어느 누가 사기꾼 유리 겔러(Uri Geller) 처럼 초능력을 발휘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유리겔라 :유리 겔라 (Uri Geller, 1946년 12월 20일~)는 영국의 마술사이다. 주요 묘기인 손가락 하나로 숟가락 구부리기나 다른 물리적인 현상을 초능력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목을 받아 40년 동안 전 세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유리 겔라는 실제로 초능력을 보여주면서 염력이나 텔레파시를 사용했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비판론자들은 단순한 마술 속임수라는 반론으로 맞받아쳤고 처음 1970년 주목을 받고 나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후에 제임스 랜디에 의해서 이는 모두 속임수를 이용한 거짓으로 밝혀졌다 ).

 

*염력- (1) 한 가지에 전념하여 그로써 장애를 극복하는 힘. (2) 초능력의 하나.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물체에 손을 대지 아니하고 그 물체의 위치를 옮기는 힘.

*텔레파시 - 한 사람의 사고, 말, 행동 따위가 멀리 있는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 심령 현상. ‘영감’

 

TV 카메라에 잡힌 바와 같이 꼭 같은 8명의 홍길동이 나타났다가 진짜 한 명은 사라졌고 나머지 7명의 홍길동이 사람 모습으로 춤까지 추다가 허수아비 짚으로 쓰러져 있었다니...

그러다가 짚 허수아비가 다시 살아나 빗자루를 타고 도망쳤다고 하는데 그 장면의 동영상을 찍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더 더군다나 홍길동 생가의 홍길동 영정(초상)속의 피는 진짜 사람의 피고 그 자리에 있던 그림 홍길동은 지금까지 정말 온데 간 데 없고 피 묻은 허연 빈 바탕만 걸려있으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그날 치료를 마친 홍길동은 다시 현중이네 집으로 갔고 물론 윤서의 책에는 빈 그림으로 남아있었다. 이를 경찰이 안다면 문제는 그대로 해결되는 것이지만 이것만은 길동이와 절대 비밀을 지키기로 윤서와 오박사까지도 굳게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윤서 아버지는 서울삼*병원 친구 오구환 박사와 시내에서 만나 대포 한잔씩 나누고 돌아왔다. 장성에서 있었던 홍길동 소동과 지금까지 치료과정 및 경찰들의 수사 활동까지 궁금한 모든 것을 서로 숨김없이 나누고 앞으로 길동이 완치되는 날까지, 아니 아이들의 친구 홍길동에 대해 절대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18.휴가 끝나고 등교한 윤서

다음날 연휴도 끝나 윤서는 오랜만에 학교에 등교했다.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오고 홍길동 소동으로 즐거운 날을 보내다보니 꽤 오래된 느낌이었다.

윤서는 등교하기 전에 이 번 여행에서 모은 각종 자료들을 챙겼다. 거기엔 한산도 배표를 비롯하여 이순신 장군의 시조와 기념엽서, 장군의 한문 휘호(붓글씨) 그리고 장성 홍길동 축제 때의 팸플릿까지 챙겨 반 아이들에게 자랑도 하고 공부 때 자료로 쓰기 위해서다. 그리고 최근엔 학교 수업 중에도 부모를 따라 여행하고 나면 여행 때 보고 듣고 느낀 자료와 체험담을 적은 보고서를 제출하면 출석으로 쳐주는 제도가 있어 윤서도 여행보고서를 준비했다. 윤서의 보고서에는 앞에서 말한 여러 자료와 팸플릿과 사진까지 곁들여 다른 친구들의 보고서 보다 더욱 생동감 있고 알찼다.

 

 

윤서네 학교는 아파트 마을 주택가를 가로 질러 길 건너에 있었다. 등교 때가 되면 새로 난 아파트단지의 여러 동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새 아파트촌이라 인구가 많아 두어 단지의 아이들만으로도 한 학교를 꾸려 갈 수 있다. 학교 가는 길에는 새로 아파트를 건설하며 낸 육교가 있었지만 차도가 한산해 대부분의 아이들이나 어른들도 육교위로 오르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 육교는 지을 때부터 소용가치가 없어 흉물로 변할 것이라며 인근 주민들도 플래카드를 걸고 반대하여 몇 차례 중단되었다가 건설된 역사를 갖고 있다. 육교 건설이 취소될 것이라던 것이 어떻게 된 셈인지 다시 공사가 시작되어 완공된 아주 멋진 육교이다. 그러나 육교만 보기 좋았지 처음 사람들이 반대했던 대로 실제 오르내리는 이용자가 거의 없어 말 그대로 흉물로 변하고 등하교 하는 아이들도 학교 선생님이 그렇게 일러도 육교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다행이 교통량이 한산해 별 탈이 없어 엄마들도 그렇게 염려하거나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윤서는 학교 가는 길목에서부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인기를 끌었다.

“야, 윤서야! 나, 너 TV에서 봤다!”

“너의 동생 꽃지도 나왔더라.”

“너, 진짜 홍길동 봤어?”

아이들은 저마다 윤서에게 매달리며 자기가 TV에 나왔던 것처럼 으스대며 떠들어 댔다. 윤서 친구들은 저마다 갑자기 유명해진 윤서의 손을 잡겠다고 손 다툼을 하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윤서의 책가방을 달래서 지기가 메고 가면서 자기가 윤서와 가장 친하다는 듯 아첨하며 바싹 붙어갔다. 지나가던 이웃동네의 중학생 용근이 형, 고등학생 남형이 형까지 윤서를 보더니 저도 TV에서 보았다는 듯 윙크를 하며 지나갔다. 윤서는 싱긋 웃으며 답례를 했다.

그렇게 여러 아이들에게 둘러싼 채 교문에 들어서자 윤서를 발견한, 먼저 등교한 친구들까지 몰려들어 벌떼가 매달린 꼴이었다. 교실에 들어가자 반 아이들이

우와아-

하며 박수를 쳐대자 윤서는 제가 뭐 탤런트나 된 것처럼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밖의 복도창문으로 다른 반 아이들이 죽 목을 빼고 매달렸고 앞 뒤 출입문께도 여러 아이들이 한꺼번에 들여다보느라고 밀치고 야단들일 때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종이 울리고 나서도 한동안 아이들은 떨어져 나가지 않자 담임교사가 교탁을 탕탕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서야 조용해졌다.

“차려! 경례” 반장의 구령소리다.

“안녕하세요?”

“그래, 연휴 잘 보냈어요?”

담임 선옥심 교사가 아이들을 죽 둘러보며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선생님, 윤서가 TV에 나왔대요.”

“뭐, 윤서가... 뭐라고?”

아이들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 의아하다는 투로 둥그런 눈을 윤서 한 테로 집중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재환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어제, 아니 엊그제 장성 홍길동 축제 때 윤서가 TV에 나왔대요. 선생님은 못 보셨어요?”

“그래? 난 딴 일이 바빠 TV 볼 새도 없었단다.”

“저어, 진짜 홍길동 소동 난 건 아시죠? 그 때 윤서가 거기 있었대요. 유서네 아빠랑 동생까지요.”

준호가 덧붙였다.

“아, 그랬어? 윤서는 탤런트 되겠네?”

담임은 예사로 받아넘기고 첫 시간 국어 교과서를 펼쳤다. 아이들의 아쉬운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수업이 시작되었다. 윤서는 수업 내내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마음은 책상 속의 홍길동 책에 가있었다.

‘그 참 이상하지? 홍길동과의 약속은 약속이지만, 참 어떻게 몇 백년 전 길동이 책 속에서 살아 나와 축제에까지 참가하다니... 그러고 피를 흘리며 도망치고, 또 치료받고 또 책 속으로 들어가고? ’

윤서는 수업 내내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쉬는 시간이 되어 곁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아우성을 칠 때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그새 아이들은 벌떼같이 모여들어 서로 자리다툼을 했다.

그는 어느새 탤런트보다 더 유명해 진 느낌이 들었다. 홍길동 소동으로 유명해진 윤서는 하루 종일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하루 일과가 끝났다

 

 

 

19.윤서네 교실 좌석 배치 - 91

오늘은 꽃사슴초등학교 윤서네 반에서 좌석을 다시 바꿔 앉는 날이다. 어느 학교, 어느 학년, 어느 반이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바꾸는 날은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큰 행사로 돼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는 자리 배치가 큰 관심의 대상이다. 그까짓 것 아무 데나 앉으면 어떠냐고 하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지 좋아하는 친구가 있고 같이 짝이 돼 앉고 싶은 친한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고학년이 되면 사춘기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이성끼리의 짝꿍이 되는 것에 퍽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인기 있는 짝이 있고 서로 멀리하게 되는 짝이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담임선생님의 슬기로운 묘안이 효과를 발휘해야하는데, 자칫 잘 못하여 부작용이 나면 며칠은 저기압으로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드디어 윤서네 학급 자리 바꾸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의 지시로 이사 갈 준비로 부산하다. 윤서는 어제 밤 꿈에 돼지꿈을 꾸어 재수가 좋을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예전엔 돼지꿈을 꾸면 아들 낳을 태몽 꿈이라며 어른들이 좋아하는 소리를 들어서다. 아이들이야 무슨 태몽 꿈일까마는 그래도 오늘, 자리 바꾸는 날에는 윤서가 좋아하는 인숙이랑 짝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윤서뿐만 아니라 윤서네 반에서 남자는 물론 여자 애들까지도 인숙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인숙이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지만 그 보다도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해서 인숙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 윤서의 한 가지 고민은 인숙이까지 차지하려는 욕심은 접어두고라도 반에서 제일 싫어하는 종혜와 짝이 될까 걱정이 앞섰다. 종혜는 인숙이와는 정반대다. 공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뚱뚱한 몸매에 키도 작고 얼굴이 못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좀체 말이 없으며, 조금만 건드려도 울보가 된다는 것이다.

 

 

윤서네 담임선생님은 학년 초, 첫 시간에‘학급 경영철학’이라는 어려운 말머리를 꺼내 한바탕 훈화를 하신 적이 있다.

*철학 -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 따위를 이르는 말.

*경영철학 - 기업이나 사업 및 학급을 자신의 경험을 살려 관리하고 운영 하는 일

 

자리 바꾸는 것만은 선생님의 철학대로 하신다고 엄명을 내려놓은 게 있어, 반 아이들은 그 ‘철학’ 앞에 꼼짝 못하고 석 달을 보냈다.

 

담임선생님의 확고한 철학이라는 게 뭐 별달리 묘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반보다 특이한 게 꼭 한 가지가 있다. 특이한 것이란, 아이들이 원하는 짝과는 정반대의 짝을 정해 주신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정해주신 짝이 싫다고 같이 앉지 않는 날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돌부처가 되어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세워 둔다는 점이다. 이쯤 되고 보면 항복 안 하는 아이들이 없다.

그것뿐이 아니다. 미술 재료나 학습 준비물 같은 것도 잘 챙겨 오지 않으면 수업 시작 전에 미리 자진해서 뒤에 나가 꿇어앉아 반성을 해야 한다. 이 법칙은 다 같이 서로 약속해둔 규칙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헌법으로 알고 있다.

자리 바꾸기 전날, 반 아이들은 같이 앉고 싶은 아이 이름을 써서 제출하면 다음날 선생님께서 좌석 배치 일람표라는 방을 붙이신다. 아이들은 그 방을 보고 자기 짝과 자리를 확인한 후 쉬는 시간에 제 자리를 찾아가 앉아야한다. 물론 짝은 남녀 혼성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다른 선생님과 특별히 다르다면 꼭 아이들이 희망했던 계획을 거꾸로 틀어지게 배치한다는 철학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원하는 여자(여자인 경우 남자) 짝꿍과 앉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골고루 돌아가며 서로 친하게 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말씀이다. 그 대신 2주일이면 반드시 새로 자리를 바꾼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짜낸다. 자리 바꿀 때 일부러 좋아하지 않거나 싸우고 나서 미운 짝꿍의 이름을 써내도 어떻게 아셨는지 그럴 때는 원대로 앉혀, 기어코 사이 나쁜 짝꿍과 짝이 되곤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사리에 밝은 선생님 별명을 귀신같다며 ‘귀신’이라고 부르곤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 몰래 별명을 부를 땐 거꾸로 ‘신귀’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아이들은 속일 수도 없고 그냥 신귀 선생님이 정해주시는 짝과 싫든 좋든 보름을 같이 지내야했다.

윤서는 매번 인숙이 이름을 써 넣었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윤서는 오늘 재수 좋게 돼지꿈까지 꾸었으니 어쩌면 한 번도 같이 앉아보지 못한 인숙이와 짝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잔뜩 기대하고 어서 방이 붙기를 고대하고 있다.

드디어 선생님께서 굵직한 싸인펜 글씨로 쓴 좌석 일람표를 붙이시고 교무실로 떠나셨다. 그 쉬는 시간에 반 아이들은 새 자리로 이사를 끝내야 한다. 아이들은 조마조마하니 가슴 조이면서 게시판 앞으로 모여들었다.

윤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숙이는 놔두고 제발 종혜하고 만 짝이 안 되었으면 돼지꿈 덕을 톡톡히 볼 것이라고 생각하며 게시판 앞으로 다가갔다. 그 때 앞서간 영길이가 우와! 하고 소리 지르며 윤서의 어깨를 툭 치며 “파이팅!” 하는 게 아닌가!

옳지! 윤서는 정신이 번쩍 나 과연 어젯밤 꿈 덕을 톡톡히 보나보다 하고 그도 손을 들어 '파이팅!' 하며 얼른 인숙이를 돌아보았다. 그 때 마침 인숙이와 눈이 마주치자 인숙이도 윙크를 보내왔다. 보나마나 인숙이도 저와 짝이 되어 나에게 기쁜 신호를 보낸 것으로 알고 ‘틀림없겠지.’ 하며 게시판을 쳐다보았더니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윤서는 눈을 닦고 다시 쳐다보아도 거기엔 장인숙이의 이름은 없고 강종혜라는 이름이 분명히 씌어있었다. 그는 다시 눈을 닦고 손가락까지 그의 이름자 옆에 짚고 살펴봐도 옆 짝은 강종혜가 틀림없었다. 이럴 수가!

돼지꿈이 이렇게 빗나갈 수가 있나?

 

뾰로통한 모습으로 영길이를 째려보며 자리에 앉은 윤서는 공부가 시작되고서도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윤서는 영길이 한 테 놀림당한 분을 사기지 못해 다시 영길이 쪽을 째려보니 그는 윤서의 기분은 아랑곳도 않고 인숙이랑 짝이 되어 둘이 좋아라고 웃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더욱 배알이 꼬여 이를 악물고 수업이 끝나면 ‘어디. 두고 보자!’며 이를 앙다물었다.

 

종혜는 부아가 난 윤서를 한 번 흘금 쳐다보더니 엷은 미소를 흘렸다.

윤서는 그 꼴이 더 더욱 얄미워 의자를 소리 나게 바같 쪽으로 끌어내 종혜와의 사이를 더 띄워 놓았다. 종혜는 윤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 않고 이번 시간 공부할 수학 책과 준비물을 꺼내느라 달그락거렸다.

이크! 윤서는 그제야 종혜의 학습 준비물을 보곤 퍼뜩 정신이 났다. 학습 자료로 방안지(모눈종이)를 잊고 온 게 생각이 났다. 선생님은 이미 책상 사이로 다니시며 아이들 준비물을 확인하는 중이고, 뒤에는 준비물을 잊고 온 한 녀석이 벌써 나가 꿇어앉은 게 보였다.

오늘, 윤서는 처음으로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은 벌을 단단히 받게 되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는 너무 너무 부끄러워 벌써부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화끈거렸다. 어느 새 콧잔등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자진해 받는 규칙도 반 아이들과 신귀 선생님과의 약속된 선생님의 철학이다.

벌써 선생님은 윤서 쪽 책상 사이 골목에 들어오고 있다. 왠지 손에 땀이 나고 얼굴이 더욱 화끈거렸다. 여태 이런 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모범생 윤서로서는 노상 벌 받는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아이고, 생전 처음 준비물 때문에 벌을 받게 되는구나. 이 게 무슨 망신이람!’ 이렇게 생각한 그는 벌 받을 각오로 막 일어서 뒤로 나가려고 하는데 종혜가 갑자기 방안지 한 장을 얼른 윤서 앞에 내 놓는 게 아닌가!

윤서의 곤경을 면해주려는 종혜의 뜻을 얼른 알아 챈 그는 멋쩍게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그새 선생님은 아무런 눈치도 못 채신 채 완벽한 윤서의 준비물을 확인하곤 그의 옆을 지나쳐 가셨다.

이렇게 하여 위기를 모면한 그는 ‘후우 - ’ 하고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며 옆자리의 종혜를 쳐다보았다.

순간 종혜와 윤서는 동시에 눈이 마주치고 저도 모르는 사이 미소를 보냈다. 종혜도 싱긋 미소를 흘렸다. 처음으로 종혜가 웃는 따스한 모습을 본 순간이다.

돼지꿈을 꾼 덕인지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은 처음이었다. 어느 새 땀이 다 말랐는지 이렇게 시원할 수가!

그렇게 보기 싫고 얄밉던 종혜가 오늘따라 미덥고 예쁘게 느껴지는 것은 모눈종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본시 이렇게 착하고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던 종혜를 우린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 사이에 영길이에게 품었던 미운 감정도 누그러지고 속이 평안해 짐을 느꼈다. 그 동안 윤서는 공연히 종혜를 미워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돼지꿈은 확실히 행운을 갖다 주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즐거운 하루가 이어졌다.

 

 

 

 

20.윤서 하늘 배 설계

 

드디어 길동의 다리 치료가 끝났다. 홍길동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소동이 며칠 새 가라앉았는지 잠잠하다. 그렇게 끈질기게 찾아오던 경찰아저씨도 오지 않고 조용해졌다.

윤서 공부방 창 너머로 오월의 맑은 하늘이 파랗다. 바로 앞으로 내다뵈는 까치동산의 푸른 숲이 신록으로 반짝이며 싱그럽다.

밀린 숙제를 다 해놓은 윤서는 며칠째 궁리하던 과학반 하늘 배 설계도를 머리 속에 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윤서네 학교에서는 매년 4월 개교기념일을 기해 교내 예술제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의 종합작품전시회를 연다고 한다.

 

아이들 상대로 한 예술제라 이름만 거창하지 교내 종합 작품전시회인 셈이다. 미술 서예 공작 수예 그리고 일기장 등 다양한 아이들 솜씨를 전시하는 종합전시회이지만 아이들의 장래 포부를 키우고 과학적인 연구와 재주를 기르기 위한 전시회이다. 윤서는 해마다 하는 이 전시회에서 어떤 해에는 커다란 점토공작으로 여러 가지 동물을 만들어 알록달록 채색을 하여 상을 탄 적도 있다. 그런 그가 올해는 홍길동을 만나 뜻밖의 아이디어를 얻어 홍길동이 신고 있는 그의 짚신을 본떠 배 모양으로 만들어 출품할 참이다. 배의 한 가운데에는 돛대를 만들어 세우고 양 옆에는 나무 숟가락을 걸어 노를 젓는 모양을 갖췄다. 카다란 짚신은 윤서가 지난 겨울방학 때 가평 외가에서 배운 짚신 삼기를 활용해 진짜 짚신보다 조금 크게 만들어 황포돛을 단 배를 선보이기로 했다. 짚신을 배로 만들어 황포돗을 달아 띄우는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아이디어가 좋다. 이는 친구 홍길동이 신고있는 짚신에서 아이디어를 떠 놀렸다. 그 참 신기하네? 짚신을 배로 만들어 돛을 단다?

그럴듯하다. 게다가 나무 숟가락을 양옆 뱃전에 꽂아 노를 젓게 한다는 아이어도 보통아이들로는 생각 밖의 구상이다.

 

그러나 윤서의 실력으로 짚신을 삼을 수 없어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짚신 한 짝을 완성해 갖고 온 것을 윤서의 공부방에 걸어둔 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보통짚신보다 커다랗게 만든 짚신 한 짝은 장식용으로 만든 것이다. 배 한가운데는 황포돛을 달아 세우고, 옆구리 난간에는 안전하게 삼실로 노끈을 꼬아 W자 모양으로 얽어 놓고 꽁무니에는 오색테이프를 달고, 배 뒤쪽에는 요즘 흔하게 보는 휴대용 선풍기를 달아 바람으로 나아가게 설계했다. 하...희한하네? 스크루 같이...?

선풍기 바람이 불 때 마다 일렁일렁 흔들리면서 오색테이프가 뒤로 나부끼는 모습은 흡사 물결을 헤치면서 나아가는 것처럼...

배 옆구리에는 구상했던 대로 노처럼 나무숟가락을 형식적으로 하나씩 꽂아 두었다. 이렇게 하면 짚신배의 설계는 잘 된 것 같다. 모든 계획이 설계한 대로 잘 완성되었다.

 

 

드디어 윤서네 학교 교내 예술제가 개막하는 날이다. 널따란 강당 안은 갖가지 전시품으로 화려하게 전시돼있고 정면 앞에는 교내종합예술제라고 큰 플래카드를 걸었다. 작품 종류 위치마다 미술, 서예. 수예. 점토공작. 종이 접기. 우유팩 등으로 만든 상자 공작, 그 외 글짓기, 일기장. 등 다양한 작품으로 구분해 각자의 주인의 꼬리표를 달고 뽐내고 있다. 각 학년별로, 전시대에는 상단 하단으로 나누어 작품에 따라 높은 곳에 두어야 할 작품은 상단에 또는 넙접한 작품은 아래쪽 넓은 자리를 차지했다. 윤서의 짚신배는 상단에 돋보이게 올려 전시 됐다. 특히 윤서의 짚신배는 커다란 짚신 한 짝에 누런황포 돛을 달아 세우고 꼭대기에는 알맞은 크기의 태극기가 돋보이게 꽂혀 있다. 배 꽁무니에는 오색테이프가 길게 늘어져 있고 휴대용 선풍기 스위치를 올리면 오색테이프가 길게 꼬리를 나부끼며 흡사 배가 항해하는 것처럼 관중의 눈길을 끌게 했다. 게다가 헛것이지만 노 모양으로 나무 숟갈을 양옆에 끼워 모터 스크루를 쓰지 않을 땐 노를 젓게 하나씩 끼워두어 구색을 갖추었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 여러 내빈들이 개관테이프를 끊기 전에 미리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심사 결과